ATTENTION 작성일 2009-05-04
통일되면 평양서도 대형회의 개최할 터 [이코노미스트]
작성자 : 인터컴 조회수 : 1820

보도사 : 이코노미스트


“통일되면 평양서도 대형회의 개최할 터”

국제회의 전문 용역업계 선두 달리는 (주) 인터컴 최태영 사장

 

'국제회의 용역업계의 무서운 아이'. (주)인터컴 최태영 사장(35)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실제 인터컴이 국내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20여개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지만 70%의 시장점유율을 인터컴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사장의 별명이 명불허전(名不虛傳)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제회의 용역업은 국제회의 개최관련 업무를 주최측으로부터 위임받아 유치에서부터 홍보, 출판, 참가자에 대한 연락, 호텔예약, 교통편 확보, 행사진행 등의 업무를 대행하는 전문용역업으로 아직까지 일반인에겐 낯선 사업이다.  최사장이 이런 사업에 뛰어든 건 실로 우연이었다.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던 그가 군복무중 새로운 인생의 전기(轉機)를 맞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서울 서초동 정보사에서 군복무를 했는데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아 외국잡지를 많이 보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미국의 유명한 경제잡지 '포브스'에서 국제회의 용역업 전문가의 활약 기사를 읽었습니다.  동시에 국내에 이런 전문가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대 후 '남들과 전혀 다른'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해 바로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제대 직전에 사업자료를 축적하는 한편 사업계획도 미리 짰다.  능통한 영어실력은 사업기반조성에 한몫 단단히 했다.

 

그의 정열적인 사업추진력은 알아줄 만하다.  제대도 하기 전에 롯데호텔 내 비즈니스 센터를 임대ㆍ운영하는 사업에 뛰어들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저돌적인 추진력은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환하게 빛을 발했다.  85년 2월 제대하자마자 사업가로 대성하기로 '독하게' 마음먹고 3월에 우선 친구 사무실 한 귀퉁이에 전화 한 대를 둔 회사부터 차렸다.  '한국말을 거의 안 쓰는' 국제적인 사업인 만큼 회사이름도 영문명으로 손수 지었다.  그때 나이 약관 23세. 사업밑천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사업안목에 탄복한 한 후원자가 2천만원의 거금을 흔쾌히 대줬다. 

 

사업진척도 빨랐다.  시작한지 불과 3개월만에 첫번째 국제회의 진행을 맡았기 때문이다.  홍콩 큘리넷 소프트웨어사가 의뢰한 것.  외국인 1백50명, 내국인 4백명이 참석해 조선호텔에서 열린 이 행사는 섬세하면서도 완벽하게 진행돼 주최측의 감탄을 자아냈다.  “첫 사업인 만큼 밤새워 점검하고 또 점검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해 완벽을 기했습니다.  당시 첫 용역비로 8천만원을 받았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아니 대성공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때부터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특히 88년 서울올림픽은 최사장에겐 발전의 '도약대'였다.  올림픽을 계기로 서울에서 국제회의 개최가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이 무렵 지금도 그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대규모 행사를 치르게 된다.  “올림픽 개최직전인 88년 8월 '서울올림픽 스포츠과학학술대회'는 80여개국에서 온 1천5백명의 외국인들을 컨벤션 센터로 활용된 천안 단국대 체육관으로 안내하고, 이들을 12개 분과로 나눠 행사를 진행시킨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는 '큰 행사도 별 것 아니다'라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이후 3천명대의 국제영양학회ㆍ아시아이식학회ㆍ국제순수응용학회 같은 굵직 굵직한 국제회의를 연달아 맡는데 성공했음은 물론이다.  사업시작무렵에 있었던 서너개의 선발업체들은 모두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인터컴의 사세는 갈수록 커졌다.  

 

매출도 수직성 장세를 기록했다.  85년 1억원에 불과했지만 88년 15억원대로 훌쩍 뛰었다.  96년에는 1백20억원ㆍ올해도 전년대비 20%의 성장이 너끈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는 성공의 비결로 '부지런함'을 제일 먼저 꼽는다.  “시간은 금 아닙니까.  잠자는 시간이 너무 아깝습니다. 사업시작 때도 그랬지만 요즘도 하루에 4시간 이상 자질 않습니다.  새벽 4시면 일어나 조간신문 정독, 업무처리ㆍ계획 등을 마치고 7시면 사무실에 도착합니다.  보통 밤 9시 넘어 퇴근하는데 근무시간이 보통 사람의 두 배는 족히 넘는다고 자부합니다.”  '하루를 48시간으로 활용한다'는 주장의 근거도 여기에 있다.  

 

고급 여성인력을 최대로 활용한 전략도 탁월한 사업감각이었다.  “초청장을 써도 여자들이 쓰는 말과 남자들이 쓰는 말이 다릅니다.  국제회의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 내는 문구는 섬세한 여자가 훨씬 더 낫지요.  게다가 분ㆍ초 단위로 진행되는 국제회의 일정을 짜는 데는 여자의 섬세함이 더욱 필요합니다.”  또 정보사회인 만큼 자연과학ㆍ의학관련 학회, 정부기관의 국제회의만을 특화시켜 수주를 극대화시킨 전략도 눈 여겨 볼 만하다.덕분에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업계의 거물, 최고 일인자'로 우뚝 섰다.  젊지만 업력(業歷)은 벌써 13년차다.  희귀한 업종인 만큼 그의 경력을 뛰어넘는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태영의 인터컴'이라면 주최자들이 묻지도 않고 수의계약을 할 정도로 최사장은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다.  좁기만 한 국내시장은 '기본'이고 나아가 통일한국시대의 시장, 외국시장까지 내다봐야 한다는 뜻이다.                                                                                                 

 

“평양의 인민궁전 회의장은 수용인원이 8천명에 달하는 대형 '컨벤션 센터' 아닙니까.  통일되면 볼거리 많은 북한에서 전세계인들이 참가하는 국제회의를 열고 싶습니다.  또 올해를 외국진출의 원년(元年)으로 삼을 생각입니다.  이미 필리핀업체에 사업 노하우를 10만달러에 판매하는 일을 추진 중입니다.  대만 컨벤션 센터와는 곧 중국에 함께 진출할 생각입니다.”  

 

“중소기업이 소프트웨어(노하우) 창작품을 업계 처음으로 외국에 수출하는 일이 의미심장하지 않느냐”는 그의 어투에는 동남아를 석권하려는 포부가 담겨 있다.  자기 사업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명백하게 고부가 가치의 '굴뚝 없는 외화 획득산업' 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국제회의를 3백회 정도 열었는데 회의당 외국인이 평균 1천명씩 왔고 또 1인당 평균 3천달러씩 국내에서 소비했다고 추정해 보십시오.”  최사장이 '불러들인' 외화가 그간 9억달러(약 7천2백억원)라는 계산이 나온다.  스스로 '애국자'라고 하는 주장도 무리가 아닌 셈이다.                                                                        

 

세계화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국제회의용역업은 더욱 각광받을 전망이다.  하지만 국내사정은 '안타깝게만' 돌아간다는 한탄이다.  “이 산업이 발전하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우선 경기가 좋아야 합니다.  쉽게 말해 반도체 경기가 나빠지면 관련 국제회의도 줄어듭니다.  정치적 안정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방문자수가 늘기 때문입니다.  호텔 객실수도 충분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88년 이후부터 정체돼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3천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컨벤션 센터가 하나도 없다는 점은 가장 큰 장애입니다.  

 

일본은 물론이고 필리핀이나 싱가포르, 대만만 가도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대형 컨벤션 센터는 쉽게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가 겪은 사업의 '실패'도 대형 컨벤션 센터 문제와 직결된다.  “93년에 1백억원 규모의 세계 건축가 협회 국제회의 용역건을 수주하기 직전까지 갔었지만 결국 한국에 1만명이 참석할 수 있는 컨벤션 센터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현재 건설 중인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용 대형 컨벤션 센터에 상당히 큰 기대를 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해 소망은 두 가지다.  사업다각화와 '교수님으로의 변신'이다.  “국제회의 용역업과 여행업은 동전의 앞뒤면처럼 밀접한 만큼 새해에는 여행업에도 새롭게 진출해 볼 생각입니다.  또 몇몇 대학 관광학과에서 산업체 겸임교수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은 만큼 후진양성에도 적극 나설 생각입니다.”  그는 “인터컴의 벤치마킹 상대는 일본 최대의 JCS사”라고 단언한다.  

 

세계적인 전문용역업체로 키우려는 그의 행보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371호/
/유상원 기자/